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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의 은행나무숲은 가을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장관을 펼친다. 개인이 조성한 숲이지만, 지금은 전국의 가을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00그루가 넘는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햇살이 땅 위에 내려앉은 듯 눈부시다. 숲길을 걸을 때마다 바람에 흔들리는 은행잎이 비처럼 쏟아지고, 발 아래에는 노란 융단이 깔려 있다. 이곳의 가을은 단풍이 아니라 ‘빛의 계절’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눈부시다.

 

 

황금빛 물결이 시작되는 길목

홍천 은행나무숲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공기의 변화다. 도시의 냄새는 사라지고, 은행잎 특유의 달큰하면서도 흙내 섞인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길의 초입부터 끝까지 이어진 은행나무들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서 있는데, 햇살이 나뭇잎 사이를 통과하며 바닥 위로 금빛 무늬를 그린다. 마치 세상이 노란빛 필터를 씌운 듯, 모든 풍경이 따뜻하게 변한다.

은행나무는 가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나무다. 다른 단풍들이 붉은색으로 물들 때에도 은행나무는 끝까지 초록빛을 유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숲 전체가 황금빛으로 변한다. 그 변화의 순간은 놀라울 만큼 극적이다. 홍천의 은행나무숲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변화의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숲은 1985년 한 개인이 자녀의 병 쾌유를 기원하며 심은 은행나무들로 시작되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약 2,000그루가 자라며 하나의 거대한 생명의 터전이 되었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도와 사랑이 자라난 공간이라는 점이 이 숲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빛과 그림자가 춤추는 풍경의 리듬

은행나무숲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다. 햇살이 나무 사이를 통과하며 바닥 위로 쏟아질 때, 나뭇잎 하나하나가 마치 금빛 유리처럼 반짝인다. 바람이 불면 그 빛이 출렁이며 숲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길을 걷다 보면 은행잎이 천천히 떨어지며 머리 위로 비처럼 쏟아진다. 그 소리는 놀랍도록 조용하면서도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자연이 연주하는 가을의 음악’이라고 표현한다. 발밑에는 이미 수많은 낙엽이 쌓여, 걸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는 도시의 소음보다 훨씬 따뜻하다.

사진을 찍기 좋은 포인트는 숲의 중앙부다.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길게 뻗어 있고, 그 사이로 길이 나 있다. 가운데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면, 나무들이 서로 맞물려 만든 황금빛 터널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 장면은 마치 빛의 강이 흐르는 듯한 착각을 준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든 이야기

홍천 은행나무숲은 단순히 자연이 만든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의 손길과 시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숲은 매년 10월 한 달 동안만 일반에 공개되며, 그 외의 시기에는 자연의 회복을 위해 문을 닫는다. 이러한 제한적 개방은 숲이 본래의 리듬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다.

가을철에 방문하면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농산물 장터가 열린다. 갓 구운 옥수수, 도토리묵, 감자전 등 지역 특산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은행나무길을 걷는 이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어떤 사람들은 혼자 와서 그저 바람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이 숲의 주인은 “이곳은 내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홍천 은행나무숲을 걷는 사람들은 단순히 관광객이 아니라, 한 계절의 일부분이 된다. 사람의 발자국과 낙엽, 그리고 바람이 어우러져 새로운 가을의 이야기를 만든다.

 

 

노란 길을 따라 걷는 사색의 시간

은행나무숲을 걷다 보면 시간의 감각이 느려진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고, 모두가 같은 속도로 걷는다. 발끝에 닿는 낙엽의 감촉,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향기, 햇살이 잎사귀를 통과할 때 생기는 그림자—all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시처럼 이어진다.

사람들은 숲 한가운데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사진을 찍으며 하루를 보낸다. 아이들은 낙엽을 던지고 웃고, 어른들은 잠시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평화로운 장면 속에는 계절의 끝자락이 주는 아련함이 깃들어 있다. 이곳의 가을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조용하고, 온기가 있다.

오후가 되면 햇살의 각도가 달라지면서 숲의 색도 변한다. 오전의 밝은 금빛이 서서히 붉은 기운을 띠며 저녁 노을빛과 어우러진다. 그 순간, 은행잎이 반짝이며 바람에 흩날릴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숨을 멈춘다. 그 풍경은 오직 가을의 한순간에만 존재한다.

 

 

결국 남는 것은 빛의 기억

가을이 끝나면 은행잎은 모두 떨어지고, 숲은 다시 고요해진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는 여전히 황금빛의 잔상이 남아 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그 빛은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다. 홍천 은행나무숲의 가을은 눈으로 본 풍경이 아니라 마음으로 새겨지는 기억이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사랑을 고백했고, 누군가는 인생의 전환점을 마주했다. 또 어떤 이는 아무 말 없이 걸으며 잊고 있던 감정을 되찾았다. 그래서 이 숲의 가을은 단순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존재하는, ‘개인적인 계절’이다.

 

홍천 은행나무숲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멈춤’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이 바로 이곳의 진정한 가치다. 노란 잎이 흩날리는 길 위에서 사람들은 깨닫는다. 아름다움은 늘 소리 없이 다가와 마음에 남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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