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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은 한국에서 겨울의 상징과도 같은 산이다. 해마다 1월이면 태백산 눈꽃 축제가 열려, 산 전체가 눈으로 장식된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변한다. 하늘에서 내린 눈이 나무마다 흰 옷을 입히고, 바람조차 얼어붙은 듯 고요하다. 축제를 찾는 사람들은 단순히 눈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눈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모여든다. 태백산의 눈꽃은 겨울의 끝자락에 피어나는 가장 순수한 기적이다.

 

 

첫눈의 고장, 태백으로 향하는 길

태백은 강원도의 중심에 자리한 고원 도시로, 한국에서 가장 먼저 눈이 내리는 지역 중 하나다. 기차를 타고 태백역에 내리면 공기가 다르다. 서늘하고 투명한 냄새가 난다. 길가의 가로수는 이미 흰 눈을 머금었고, 사람들의 옷깃에는 차가운 숨결이 맺힌다. 축제가 열리는 시기에는 시내 전체가 흰색으로 물든다.

태백산 눈꽃 축제로 향하는 길은 마치 겨울의 터널을 통과하는 듯하다. 창밖의 풍경은 하나의 색조로 일관되어 있다. 회색 하늘, 흰 산, 검은 나무. 그러나 그 단조로움 속에 강렬한 대비가 숨어 있다. 이곳은 겨울의 정수가 응축된 공간이다.

차창 너머로 태백산의 능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마치 어린 시절 첫눈을 본 표정처럼, 기대와 설렘이 섞여 있다. 그 감정은 이미 여행의 절반이다.

 

 

하늘 아래 가장 순백한 축제, 눈꽃이 피어나는 순간

축제의 현장에 들어서면 눈의 세상이 펼쳐진다. 눈꽃 조형물, 얼음 성곽, 눈으로 만든 미로와 조각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태백의 눈은 다른 곳보다 가볍고 부드럽다. 손으로 쥐면 금세 녹지만, 그 짧은 순간의 촉감은 잊히지 않는다.

축제장은 가족 단위 관광객, 연인, 그리고 사진 작가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눈썰매를 타고, 서로 눈을 던지며 웃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산 전체를 울린다. 그 소리는 눈꽃보다 더 맑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나무마다 피어난 ‘눈꽃’이다. 눈꽃은 단순히 눈이 쌓인 게 아니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서리로 변하면서 나무의 가지에 얼어붙어 생긴 결정체다. 햇살이 비치면 그 결정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것은 마치 하늘이 직접 내려놓은 꽃 같다.

 

 

태백산 등산로, 겨울의 순례길

축제의 중심은 태백산 등반이다. 천제단까지 오르는 길은 약 4km 정도로, 눈 덮인 숲길을 따라 이어진다. 이 길은 단순한 등산로가 아니라 ‘순례길’이라 불릴 만하다. 사람들은 묵묵히 걸으며 겨울의 정수를 체험한다.

발밑의 눈은 ‘뽀드득’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나무 사이로 햇살이 스며든다. 숨은 차갑고, 볼은 시리지만, 그 불편함조차 특별하다. 걸음을 옮길수록 눈꽃이 짙어진다. 가지마다, 돌담마다, 심지어 바위 틈에도 하얀 꽃이 피어 있다.

정상 근처에 다다르면 바람이 세다. 그러나 그 찬바람 속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사방이 흰색으로 뒤덮인 태백의 설경. 그 위로 햇살이 내려앉으면, 산은 순간적으로 황금빛으로 빛난다. 그 장면 앞에서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침묵은 이곳의 예의다.

 

 

천제단, 하늘과 가장 가까운 제단

태백산 정상에는 천제단이 있다. 예로부터 이곳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성스러운 장소로, ‘하늘의 문’이라 불렸다. 눈꽃 축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바로 이 천제단에서 열리는 제례 행사다.

흰 눈 위에 제단이 차려지고, 전통 복식을 입은 제관들이 하늘을 향해 절을 올린다. 북소리가 울리면, 주변은 순식간에 숙연해진다. 그 순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은다.

눈 위의 제례는 현실과 초월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인간의 세계가 잠시 멈추고, 자연과 하늘이 이어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태백산의 설경은 단순히 아름답지 않다. 그것은 경외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밤의 태백,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눈의 도시

해가 지면 태백산의 풍경은 또 한 번 변한다. 눈 위로 수천 개의 조명이 켜지며, 축제장은 환상의 세계로 변신한다. 얼음 조각상은 조명에 따라 색이 바뀌고, 눈길을 따라 LED 조명이 반짝인다.

커플들은 손을 잡고 걷고, 아이들은 불빛 아래서 눈싸움을 한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온천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추운 겨울밤임에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특히 축제 마지막 날 밤에는 불꽃놀이가 열린다. 눈 위로 터지는 불꽃은 다른 계절의 어느 장면보다도 아름답다. 하얀 눈 위에 비친 붉은 불빛은 눈꽃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눈꽃과 사람, 그리고 시간의 흔적

태백산의 눈은 모든 것을 덮지만, 그 속에는 이야기가 남는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발자국, 웃음소리, 눈 위의 그림자.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감정의 잔상이 남는다.

태백의 주민들에게 이 축제는 생업이자 삶이다. 그들은 한겨울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포장마차에서는 뜨거운 어묵과 감자전이 팔리고, 시장에서는 따뜻한 인심이 흐른다. 추위 속에서도 인간의 온기가 느껴진다.

이 축제의 진짜 의미는 바로 ‘사람’에 있다. 눈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그 눈 아래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봄이 와도 사라지지 않는 겨울의 기억

태백의 눈꽃은 결국 녹지만, 그 기억은 오래 남는다. 눈이 녹은 자리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그 물은 다시 강을 이루어 흘러간다. 겨울이 남긴 흔적은 봄의 생명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일상으로 복귀하지만, 마음속에는 태백의 하얀 풍경이 남는다. 그 풍경은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위로가 된다. 눈은 사라지지만, 그 순백의 순간은 영원히 남는다.

태백산 눈꽃 축제는 그래서 단순한 지역 행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 계절과 시간의 대화이자, ‘순수함을 기억하라’는 겨울의 속삭임이다.

 

 

결국, 눈은 다시 내린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태백에는 다시 눈이 내린다. 사람들은 또다시 그 산을 오르고, 눈꽃을 바라본다. 계절은 돌고, 사람은 바뀌지만, 풍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태백산의 눈은 자연의 순환을 상징한다. 사라짐이 끝이 아니라, 다시 피어날 준비라는 것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그 단순한 진리를 눈 속에서 배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약속한다. “내년에도, 이 눈을 보러 오리라.” 그것이 태백산이 매년 겨울마다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이유다. 눈꽃은 피고, 녹고, 다시 피어나며 그렇게 영원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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