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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남강 유등축제는 가을밤 남강을 수놓는 거대한 빛의 서사로, 도시의 일상이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생명을 얻는다. 강 위로 떠오른 수천 개의 유등과 성곽 위를 비추는 은은한 조명, 그리고 촉석루를 배경으로 흐르는 남강의 수면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압도적인 장면을 만든다. 이 축제는 단순한 야간 경관을 넘어,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의 신호로 남강에 띄워졌다는 유등의 기원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상징적 의식이기도 하다. 강을 오가는 바람이 등불의 숨결을 흔들면 물빛과 불빛이 겹겹이 포개져 새로운 패턴을 만든다. 부교를 건너며 가까이서 바라보는 대형 조형등, 가족과 함께 소원을 적어 띄우는 체험등,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먹거리와 공예 노점까지 더해지면 축제는 하나의 살아 있는 거리 미술관이 된다. 사람들은 등불에 마음속 이야기를 담아 흐르게 하고, 강은 그 소망을 조용히 품은 채 도시의 밤을 길게 확장한다. 어느 지점에서 바라보든 이 축제의 핵심은 ‘빛이 흐른다’는 사실이며,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시간의 단면과 도시의 기억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빛이 강을 흐르게 할 때, 진주의 밤이 시작된다

해가 서쪽 들녘으로 기울면 강변의 공기는 한층 서늘해지고, 성곽의 그림자 사이로 조명 준비가 분주해진다. 초저녁의 남강은 아직 고요하지만, 수면 아래로 번지는 얕은 금빛이 곧 다가올 장면을 암시한다. 불이 하나둘 켜지는 순간, 촉석루의 처마선이 부드럽게 떠오르고, 성벽을 타고 내려온 빛이 강가의 얕은 물돌이와 만나 은은한 농담을 만든다. 강 가운데 설치된 대형 조형등은 물결의 미세한 떨림을 그대로 받아 반짝이며, 가까이 다가갈수록 소재가 지닌 질감과 장인의 손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유등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다. 등 속에 적힌 한 줄의 바람, 색과 형태로 엮어낸 지역 설화, 강을 건너는 이들의 발걸음이 합쳐져 만들어낸 ‘참여의 풍경’이다. 등불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물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데, 그 느린 속도 덕분에 관객은 자기 호흡을 되찾는다. 강변을 돌며 바라보는 시야는 끊임없이 바뀐다. 성곽 위에서 내려다보면 유등의 군집이 수면에 별자리처럼 흩어지고, 부교 위에서는 등과 관람객의 거리가 한 팔 간격으로 좁혀져 빛이 피부의 온도를 바꿔놓는다. 아이들은 등 모양 속에서 동화 속 장면을 찾아내고, 어른들은 수면에 반사된 빛의 결을 오래 바라본다. 강을 가르는 밤바람은 간헐적으로 향초와 군것질 냄새를 섞어 실어 나르며, 축제의 감각을 시각에서 후각과 미각으로 확장한다. 길 모퉁이 공연 무대의 북소리가 미세하게 배경을 장식하고, 사진가들은 셔터를 여닫는 리듬으로 자신의 시선 속도를 정돈한다. 이러한 모든 요소는 서로를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느슨하게 연결돼 축제의 리듬을 만든다. 조급함을 내려놓기 좋은 밤이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왔을 때, 강 위의 조명은 이미 다른 구도로 바뀌어 있다. 물결과 바람, 사람이 남긴 여백이 즉석에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가을의 남강은 그렇게 한밤에도 계속 성장한다. 빛은 멈추지 않고, 그 흐름을 따라 걷는 일은 곧 도시의 숨결에 보폭을 맞추는 일과 다르지 않다. 어느새 관람객의 걸음은 느려지고, 마음속 소란은 멀어진다. 이 축제의 첫인상은 장엄함이지만, 끝내 남는 정서는 고요함이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왜 지금 이곳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답은 강 위에 떠 있다.

 

 

강을 건너는 동선, 최적의 시야와 체험을 위한 실전 가이드

유등축제를 온전히 즐기려면 ‘어디서 시작해 어떻게 걸을 것인가’를 먼저 정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해가 지기 전 진주성 안쪽부터 출발하면 성곽의 실루엣과 황혼의 색을 동시에 담을 수 있다. 촉석루 앞마당에서 남강을 내려다보며 전체 구도를 파악한 뒤, 성벽을 따라 강변 산책로로 내려가면 시야가 높이에서 수평으로 전환된다. 이때 첫 번째 포인트는 강 중류의 대형 조형등 군집이다. 수면 가까이에서 보는 색의 겹침, 구조물의 섬세한 골격, 바람과 물결이 만드는 미세한 흔들림까지 관찰할 수 있어 시각 경험의 밀도가 높아진다. 이어 부교를 통해 강을 건너는 길로 동선을 잡아보자. 부교는 축제의 ‘몸으로 건너는 장면’을 제공한다. 조심스레 흔들리는 발판, 물 위로 더욱 가까이 다가온 등빛, 반사광이 얼굴과 손등을 스치며 지나가는 감각은 강변에서의 감상과 전혀 다르다. 반대편 제방에 닿으면 먹거리와 공예 부스가 이어진다. 여기서 잠시 속도를 늦추어 지역 장인들이 만든 소등(小燈)을 천천히 살펴보자. 얇은 한지의 섬세한 결, 대나무 살의 곡선, 붓으로 그린 문양의 호흡이 한 물건 안에 담겨 있다. 다시 남강교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다리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유등의 배치가 색다른 구도를 선사한다. 교각 사이로 프레이밍된 등빛은 사진에서 강력한 원근감을 만들어준다. 시간대는 황혼 직후부터 완전한 야간 사이의 청색 시간대가 가장 드라마틱하다. 하늘은 파랗고 등은 이미 제 빛을 내며, 수면은 두 세계를 나란히 비춘다. 주말 인파를 피하고 싶다면 평일 저녁 첫 점등 시각에 맞추되, 귀가 시간대를 분산하기 위해 강 건너편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동선을 잡는 방법도 유효하다. 걷는 속도는 ‘서너 걸음—정지—한 장면 응시’의 리듬이 좋다. 축제의 본질은 느림에 있다. 빠르게 통과하면 장면은 남지만, 이야기는 남지 않는다. 여유가 된다면 소원등 제작 체험을 권한다. 손끝에 남는 풀 냄새와 한지의 촉감, 등 속에 적어 넣는 문장 하나는 강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빛 중 하나로 흘러가지만, 당사자에게는 유일한 기호가 된다. 마지막 구간은 다시 성곽 위로 올라가 도시 야경과 등빛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 좋다. 이 시점에서 축제는 하나의 지도처럼 머릿속에 정리된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보았고, 어떤 냄새와 소리를 지나왔는가. 발자국의 연쇄를 기억하는 일이 곧 축제를 오래 붙잡는 방법이다.

 

 

등불에 새긴 도시의 역사, 공동체가 만드는 현재진행형 예술

남강의 유등은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표식이자, 현재의 시민이 다시 쓰는 서사다. 진주대첩의 유래로 알려진 등불의 기호는 외세의 침탈 앞에서 연대와 신호, 그리고 염원의 기능을 했다. 오늘의 축제에서 그 의미는 ‘함께 만든다’로 확장된다. 시민과 학생, 지역 장인과 예술가가 참여해 제작한 등은 모양마다 다른 이야기를 담는다. 지역의 설화, 강가의 새, 시장의 하루, 산업의 기억, 사라져가는 골목의 풍경까지 유등의 표면이 하나의 아카이브가 된다. 등은 빛을 내는 동시에 기억을 비춘다. 물 위로 떠 있는 대형 조형등은 도시가 자기 얼굴을 어떻게 그리고 싶은지에 대한 선언으로도 읽힌다. 거대한 물고기, 소원을 물고 하늘로 오르는 학, 성곽을 감싸는 용의 몸체 같은 상징들은 도시의 심리적 풍경을 시각화한다. 아이들이 그리는 색채는 단순하고 선명하며, 어른들의 등에는 복잡한 선과 사연이 얽힌다. 축제 현장의 공예 부스에서 마주치는 장인들은 말한다. “빛은 결국 지나가지만 손끝의 기술은 다음 세대의 불씨가 된다.” 이 말은 축제의 지속 가능성을 설명한다. 유등 제작에 친환경 재료를 도입하고, 사용 후 재활용과 보존을 병행하는 시도는 의미 있는 변화다. 강이라는 생태계를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빛의 잔치를 오래 지속시키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한편, 강변의 먹거리와 음악, 퍼포먼스는 축제의 몸과 피부를 이룬다. 진주 비빔밥의 고소한 참기름 향, 따끈한 어묵 국물 한 모금, 지역 맥주 한 잔은 감각의 층위를 풍부하게 만든다. 무대 위 국악기의 장단과 재즈의 즉흥이 교차할 때, 남강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거대한 야외극장이 된다. 관객은 좌석 없는 관객석에서 이동하며 자신의 장면을 편집한다. 그 과정에서 도시의 밤은 공동 작업물이 된다. 등불 하나에 적힌 낱말, 낯선 이와의 짧은 미소, 부교에서 나란히 멈춰 선 순간의 침묵까지 모두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축제는 완성품이 아니라, 참여가 쌓이는 현재진행형이다. 남강은 그것을 조용히 기록한다.

 

 

밤을 품은 강이 남기는 잔상, 다음 계절을 비추는 약속

돌아가는 길, 강바람에는 아직 등불의 체온이 남아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느리게 풀리고, 소란스러운 낮의 기억도 빛의 속도에 맞춰 차분해진다. 가을의 축제는 언제나 끝이 가까운 계절의 숲을 통과한다. 그래서일까, 남강을 떠날 때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안도감과 가벼운 섭섭함이 함께 남는다. 오늘 띄운 한 줄의 문장은 어디쯤 흘러가고 있을까. 누군가의 등불과 스쳐 서로의 소망을 비추었을까. 이런 질문을 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미 다음 방문을 예약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유등축제를 오래 기억하는 방법은 화려한 장면 하나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몸의 감각으로 배운 리듬을 일상으로 옮겨오는 일이다. 천천히 걷기, 잠깐 멈춰 보기, 낯선 이에게 미소 건네기,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 축제는 도시가 우리에게 익히는 예절이기도 하다. 남강의 등불은 해가 바뀌어도 다시 떠오를 것이다. 다만 매년 같은 곳을 걷더라도 수면과 바람, 사람은 달라져 전혀 다른 밤을 만든다. 그 변화가 축제를 낡지 않게 한다. 빛은 흘러야 아름답고, 기억은 나눌수록 단단해진다. 언젠가 다른 계절에 다시 진주를 찾게 되면, 낮빛의 남강과 성곽을 먼저 걸어도 좋겠다. 밤을 위한 낮의 조사(調査)는 경험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오늘의 등, 내일의 길, 그리고 우리 사이의 여백을 이어주는 매듭은 그렇게 생긴다. 남강을 건너던 발판의 미세한 흔들림처럼, 삶도 작은 진동 속에서 중심을 찾아간다. 유등축제의 밤이 알려준 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