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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질수록 덕유산은 흰 눈으로 덮이며 완벽한 침묵의 세계로 변한다. 무주의 덕유산 설경 트레킹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여정이다. 하늘과 산, 나무와 바람이 모두 같은 색으로 물드는 순간,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자신을 잊는다. 덕유산의 겨울은 차갑지만 따뜻하고, 고요하지만 살아 있다. 그 풍경 속에는 계절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순백의 아름다움이 있다.

 

 

하얀 산의 초입- 겨울을 향한 첫걸음

무주의 아침은 유난히 투명하다. 해가 막 떠오르기 전, 덕유산 입구에는 서리가 내려앉고 공기는 수정처럼 차갑다. 등산객들은 두꺼운 옷을 여미며 스틱을 손에 쥔다. “오늘은 눈이 더 쌓였대요.”라는 말이 들리면 모두의 눈빛이 조금 더 밝아진다. 덕유산은 겨울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눈이 내릴수록 산은 더 고요해지고, 그 고요함은 오히려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등산로는 부드럽게 경사를 오른다. 초입에는 나무들이 다소곳이 서 있고, 가지마다 하얀 눈이 쌓여 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이 산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음악이다. 사람들은 말없이 걸으며 눈길을 밟는다. 그 소리가 길게 이어지면 어느새 마음속 소음이 사라진다.

겨울 산행의 첫걸음은 언제나 망설임과 설렘이 공존한다. 하지만 덕유산은 부드럽게 사람을 품는다. 산은 결코 거부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모든 발걸음을 받아줄 뿐이다.

 

 

설천봉으로 가는 길- 하늘과 맞닿는 풍경

덕유산의 가장 대표적인 구간은 곤돌라를 타고 오르는 설천봉 구간이다. 눈 덮인 숲 위를 지나며 하늘로 향하는 곤돌라 안은 잠시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흑백 수묵화 같다. 나무와 바위, 계곡과 능선이 모두 흰빛으로 녹아들어 선명한 경계가 없다.

곤돌라가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세지고, 하늘빛은 점점 푸르게 변한다. 눈은 더 깊어지고, 산의 능선은 구름과 닿아 있다. 설천봉에 내리면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그 찬 공기 속에는 설악이나 오대산에서도 느끼기 힘든 정적이 흐른다.

설천봉은 덕유산 트레킹의 시작점이자, 동시에 가장 인상적인 전망대다. 눈 덮인 능선을 따라 이어진 길은 마치 하늘을 걷는 듯하다. 사람들은 서로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말보다 호흡으로 대화한다. 덕유산의 겨울은 그 자체로 ‘침묵의 언어’다.

 

 

백련사와 향적봉- 설경 속의 고요한 마음

설천봉에서 향적봉으로 가는 길은 덕유산 설경의 핵심이다. 그 길의 중간에는 백련사가 있다. 겨울의 백련사는 마치 눈 속에 갇힌 듯 고요하다. 법당의 지붕에는 눈이 소복히 쌓이고, 작은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낸다.

백련사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면, 세상 모든 소리가 멈춘 듯하다. 바람조차 경건해진다. 스님 한 분이 눈을 쓸고, 향을 피운다. 그 향내는 눈 냄새와 섞여 산 전체로 퍼진다. 사람들은 그 장면 앞에서 자연스레 고개를 숙인다.

백련사를 지나 향적봉으로 향하는 구간은 덕유산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가장 힘든 길이다. 길은 좁고 미끄럽지만, 그 끝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모든 고생을 잊게 만든다. 향적봉 정상에 서면 사방이 하얗다. 하늘, 땅, 산, 구름 — 모든 것이 눈으로 연결된다.

그곳에 서면 사람들은 말없이 웃는다. 단순히 풍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자신이 이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하얀 능선 위의 침묵- 설경이 들려주는 이야기

덕유산의 능선은 길게 이어진다. 겨울의 햇빛은 약하고, 그림자는 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눈송이가 흩날리며 공중에 떠다닌다. 그 모습은 마치 산이 숨을 쉬는 듯하다.

능선을 걷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 말을 아낀다. 대신 눈빛으로 교감한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단지 하늘을 바라본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하지만,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다.

덕유산의 설경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절제된 아름다움이다. 그 절제 속에서 오히려 깊은 감동이 피어난다. 세상은 소리로 가득하지만, 덕유산의 겨울은 침묵으로 말한다. 그 침묵이야말로 진짜 자연의 언어다.

 

 

구천동 계곡- 얼음의 노래가 흐르는 곳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는 구천동 계곡이 있다. 여름에는 청량한 물소리로 유명하지만, 겨울에는 얼음의 세계로 변한다. 바위 사이로 흘러내리던 물줄기는 얼어붙어 투명한 유리처럼 반짝인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얼음 기둥들이 가지런히 서 있다. 그것들은 마치 신비로운 악기의 현처럼 빛을 받아 울린다. 바람이 스치면 ‘짤랑’하는 소리가 들리고, 햇살이 스며들면 작은 무지개가 생긴다.

그 풍경 앞에서 사람들은 걸음을 멈춘다. 손끝으로 얼음을 만지며 미소를 짓는다. 덕유산의 겨울은 이렇게 눈과 얼음, 바람이 어우러져 만든 완벽한 교향곡이다.

 

 

겨울의 끝자락- 무주 사람들의 미소

트레킹이 끝나면 사람들은 무주 읍내로 내려온다. 시장에는 따뜻한 국밥집이 있고, 거리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무주 사람들은 여행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춥죠? 이거 한잔 하세요.”라며 내어주는 따뜻한 유자차 한 잔에 손끝의 냉기가 사라진다.

덕유산 눈꽃 트레킹은 단지 자연의 풍경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온기까지 이어지는 여정이다. 겨울의 차가움과 인간의 따뜻함이 이 작은 도시에서 완벽히 조화를 이룬다.

저녁 무렵, 숙소 창문 너머로 산의 능선이 보인다. 그 위로 달빛이 내려앉고, 바람이 천천히 움직인다. 그 순간 여행자는 깨닫는다. 진짜 여행의 끝은 도착이 아니라 ‘멈춤’이라는 것을.

 

 

별이 내리는 밤- 산이 잠드는 시간

무주의 밤하늘은 도시의 불빛이 닿지 않는다. 덕유산의 겨울밤은 깊고, 별빛은 가까워 보인다. 눈 위에 반사된 별빛은 마치 하늘이 두 개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조용히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은 서늘하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따뜻하다. 낮 동안의 차가움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고요뿐이다. 캠프파이어를 둘러싸고 앉은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고요한 밤은 오랜만이에요.”라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불빛이 점점 사그라들면, 산은 다시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덕유산은 또 하나의 겨울밤을 품는다.

 

 

덕유산이 가르쳐주는 것

덕유산의 겨울은 인간에게 한 가지를 가르쳐준다. ‘멈춤의 미학’.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덕유산은 느리게 숨 쉬며 사람들에게 묻는다. “너는 언제 마지막으로 멈춰보았는가?”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사람들은 오르고, 다시 내려간다. 그 모든 반복 속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오르는 속도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얼마나 깊이 ‘느꼈는가’이다.

덕유산 설경 트레킹은 단지 산을 오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여정이다. 눈 위의 발자국이 결국 녹더라도, 그 길의 기억은 오래 남는다.

덕유산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모든 길은 언젠가 녹지만, 발걸음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겨울의 끝에서 피어나는 이 깨달음이야말로 덕유산이 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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